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즈 마운트배튼 (문단 편집) === 루이즈의 혼담 === 루이즈는 몇 번의 혼담이 오갔으며 그 중 한 번은 약혼까지 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루이즈에 대한 첫 번째 혼담이 오고 간 시기는 루이즈가 스무 살 무렵이었고, 상대는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인 [[마누엘 2세]] (1889~1932)이었다. 하지만 루이즈가 혼담을 거절하자 [[에드워드 7세]]는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라고 루이즈의 부모에게 압력을 넣었는데, 이때 루이즈는 "홀아비나 국왕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두 번째 혼담은 언니 앨리스의 시동생([[요르요스 1세]]의 5남)이었던 크리스토포로스 왕자(1888~1940)와의 혼담이었다. 앨리스는 동생이 그리스로 시집오길 바랐고 시동생과 잘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앨리스의 바램이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오히려 가지 않아서 다행이였다. 훗날 그리스 왕실은 상황은 불안정해져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앨리스]]는 망명을 해야 했다.] 세 번째는 1차 대전 때 만난 한 젊은 화가와의 약혼이었다. 가족들이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으로 부른 이 남자는 루이즈와 함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족의 반대에도 루이즈는 약혼하길 원했고 약혼은 하되 발표는 안하기로 합의가 되었으나 약혼은 파혼으로 끝난다. 파혼 이후에도 루이즈는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